삶의 잔잔함

아버지와 장인어른......(퍼온글)

밤나무골 2007. 1. 31. 14:47

지난 추석 직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이 토요일이라 쉬는 날 이었는데 평소  우리가 잘가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겸 노인정 월례회가 있다는 장인어른 말씀을 듣고 아내와 같이 노인분들에게 약간의 선물을 해 드리기로 하고 근처 할인매장에서 큰수건 50장을 사서 식당으로 갔다 (장인어른이 노인정 회장이다). 다른 분들은 앉아계시고 장인어른 일어서서 뭔가 말씀을 하고 계셨는데 들어서는 순간 온 시선이 우리 부부에게 집중되었다. 

<-?xml:namespace prefix = o /> 


사전에 전혀 얘기도 없었으니 장인어른 깜짝 놀라셔서 웬일이냐고 물으시는데 그냥 어르신들에게 추석인사겸 선물로 수건 좀 들고왔다고 하니 장인어른 좋아하셨다. 어린애들처럼 와- 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도 터지고… 신이 난 장인어른 “얘들이 내 딸이고 사위여” 인사를 시키는데 보니 남자분들은 겨우 서너명이고 모두 할머니 들이었다. 한분씩 돌아가며 수건을 나누어 드리는데 혹시나 모자라서 못받을까 서로 먼저 받을려고 난리도 아니었다. 별것 아닌 수건 하나로도 그렇게 좋아하시는 노인분들을 보고 아내와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날 저녁 장인어른과 같이 식사를 하는데 장인어른께서 연방 싱글벙글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오늘 너희들 덕분에 내가 완전히 스타됐다.” 

아내 “아이구 아버지 보니까 완전히 할머니들 한테 파묻혀 있던데 기분 좋았겠네” 장인어른 “물론이지 전부 딸 잘 뒀다고 다 부러워 하더라”

여기까진 좋았는데 그 다음 하시는 말씀이

“근데 여기저기서 너무 날 띄워주는 바람에 그만 내가 사고를 쳐버렸네”

아내와 나 동시에 긴장해서

“예? 무슨 사고요?”

“아 글쎄 내가 기분이 너무 좋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랬지 뭐냐. 이건 그냥 인사고 곧 내 생일이 돌아오니까 그때 딸이 우리 모두 초대해서 한 턱 낸다 했다고 … 큰소린 쳤는데 어쩌지 ?”

나 “잘 하셨어요. 돌아오는 생신날 저희들이 자리 마련하지요. 난 또 무슨 큰 사고 치신줄 알았네”

“정말 그렇게 해 줄거지?”

“네, 걱정 마세요. 저희들이 알아서 할께요”

그렇게 분위기 좋게 얘기가 흘러갔는데 장인어른 문득 돌아가신 장모님 생각이 나셨던지 넋두리처럼 주섬주섬 말씀하셨다.

“그래, 밖에서 바둑도 두고 친구들도 만나고 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를 때가 더러 있지. 근데 막상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그렇게 마음이 허전할 수가 없어. 그래서 엄마 사진앞에서 오늘 있었던 일들 혼자 얘기하면서 엄마한테 그런다 나 좀 제발 빨리 데려가 달라고… 엄마랑 좋았던 기억보다 안좋은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르고… 이렇게 후회되는 걸 내가 그때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몰라… 얼마든지 엄마랑 더 좋은 시간 가질 수도 있었는데..“

10여년 전으로 장인어른 때문에 처가가 발칵 뒤집혀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큰처남 사업실패로 처남들은 물론 처부모 살던 그 큰 집마저도 줄줄이 경매로 넘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설상가상 거의 같은 시기에 장인어른 오랫동안 감쪽같이 딴 살림 차리고 있었던게 들통이 나서 견디다 못한 장모님 음독자살을 시도해서 10여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셨다. 그 일로 해서 처가식구들은 물론 아내에게도 악몽 같은 시간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장인어른에게는 아마 그 일이 평생 마음의 짐이 되었을 것이다. 아내도 어쨌든 아버지니까 살아계신 동안은 최선을 다 한다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지만 그 일만 생각하면 장인어른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고 지금도 가끔 얘기하곤 한다. 네 처남들이 아직도 장인어른과 소원하게 지내는 것도 아마 그 일이 큰 영향을 미쳤을 지도 모르겠다. 나이드신 분들에게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이 자녀들에게 소외당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장모님 돌아가신지 2달도 채 되지 않아 맞은 지난 추석, 처남들 아무도 장인어른께 오지 않았고 연락조차 없어 결국 추석을 우리 가족과 함께 조촐하게 지냈다. 

몇 년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난다. 평생을 직업도 없이 매일 술에 취해  툭하면 때리고 부시고… 부부간 애정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이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도 무책임했던 그야말로 한량.. 그래서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가족끼리 오붓하게 외식하는 그런 기억은 아예 없고 늘 계속되는 아버지의 폭력과 지지리도 가난했던 기억밖에 없다. 그랬던 분이 어머니 돌아가시자 갑자기 말씀도 없어지시고 아예 식사도 거른채 술로 사셨다. 기억에 남는 것은 어머니 돌아가신 그 해 겨울 고3이던 아들이 원했던 대학에 합격해서 얼마나 기분 째지는지 여기저기 한턱 내느라 바빴는데 다음해 봄 아들 입학식 전날 60여명이 넘는 친척분을 초대해서 거나하게 한턱 냈던 적이 있었다. 

큰 횟집 한 층을 통째로 노래방 기계까지 빌려 노래 부르며 춤도 추고 모두들 신나게 놀았는데 그 놀기 좋아했던 아버지, 끝내 춤은 고사하고 노래도 한 곡 부르지 않고 시종 침울한 얼굴로 계속 술만 들이키셨다. 손주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학에 그것도 전액장학생으로 붙었으니 이렇게 기쁜날 어머니가 살아 계셨음 나도 얼마나 좋았겠느냐만…  그렇게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생각할 때마다 나는 물론 우리 형제들, 제발 아버지 미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결국 그 다음해 아버지 술로 돌아가셨다.

부부라는 게 그런가 봅니다. 남들 보기에는 아무리 사이가 좋지않다 하더라도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로 소중한 존재인 것을 생전에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자신 욕심대로 행동하며 상처를 주고 살다가 막상 세상 떠나면 그제서야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한순간의 헛된 혈기의 대가로 결국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나이들어 자녀들에게 까지 소외당하는 두고두고 평생을 후회할 우를 범하는 건 아닌지.. 나름대로는 다 피치못할 사연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가끔 여기 글 남길 때마다 자주 드리는 말씀인데 전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 가정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적어도 내 가족을 위해 힘들더라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주시는 거라고… 출세도 못하고 큰 부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가정의 가장일지라도 최소한 가족들에게 만큼은 떳떳한 남편과 아버지로 살아가는 게 제일 좋은 삶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여자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한때의 호기로 남편의 사랑과 신뢰를 잃고 자녀들에게 까지 지울수 없는 상처를 준다면.. 결코 행복한 삶이 되긴 어렵겠지요. 그저껜가 신문에서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을 했더니 자기 아내가 들어와서 소란이 있었다는 희한한 기사도 있던데..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타락되가는 지 참.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하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을 보면 역시 아내보다 남편이 먼저 세상 떠나는게 나은 것 같다고 지나가는 투로 생각없이 말했다가 아내에게 맞아 뒤질뻔 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사랑하시고 행복하세요.